성적이 왜 떨어지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전교 10등 밖으로 밀려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늘 공부를 열심히 했고, 다른 데에 신경을 쓰거나 다른 일을 하지도 않았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내 일상에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자기 취미 생활을 다 하는 혜신이는 그대로 1등인데 공부에만 전력을 다하는 나만 왜 이러는 건지….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혜신이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 나는 아파서 학교를 빼먹는 일은 있어도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탑클래스 정예반은 링겔을 맞으면서도 꼭 와야만 했다. 그러나 혜신이는 달랐다. 집안에 좋은 일이 있어서 파티하느라 결석한다고 톡을 보낸 혜신이가 어이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놓치지 않는 1등은 참 편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혼자서 밥이 넘어갈 것 ...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내게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주 느리게 걷는 그 아이에게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그 아이가 멈추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그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아이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딱 거기에… 있어....
도대체 이 여자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변기를 열심히 닦고 있는 그녀를 낡디 낡은 화장실 입구에서 발견했다. 작고 통통한 그녀의 엉덩이가 먼저 나를 향해 씰룩거리며 인사를 했다. 남차장이 다가오는 걸 보고 손짓으로 보내고 나서 나는 그녀가 돌아보기를 기다리면서 그녀의 뒷태를 감상했다. 이 여자가 벌이는 모든 짓은 늘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꽃망울이 터지는 모습을 보니, 봄은 봄인 것 같다. 옛 어른들이 세월이 화살처럼 가더라고 하던 말씀은 과장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이러다가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아가씨에서 바로 아줌마로 넘어가는 노화를 겪게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쩌다가 눈만 높아져서 한없이 올려다 보자니 내 고개만 아프다. 나는 왜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이...
회의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웬일로 이사장님이 일찍 출근하셨다. 비상근인데다가 판공비도 적어서 그럴 필요 없는데도 이사장님은 누구보다 열심인 분이다. 그래서 내가 끌려 들어왔긴 했지만. 새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들이며 학교 행사며 학교 일로 바빠서 치어 죽을 지경이라며 한탄을 늘어놓던 이사장님은 시간이 흐르자 결국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아마도...
그에게 바람을 맞고 남차장과 대략적인 쉼터 상황에 대해 얘기를 마치고 온 날 저녁이었다. TV 뉴스에 성의원이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치 분야는 백지에 가까웠던 터라 솔직히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거침없는 호방한 성격이었다는 고인의 얼굴에서 그의 와이프 얼굴이 살짝 보였다. 그냥 그런 보통의 와이프라도 장례 때는 자리를 지키기 마련인데, 오랫동안 가깝...
김대표에게 전화를 해놓고도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로 잘 모르는 시기였을 때는 용기만 있으면 되었지만, 이제는 쌓아올린 관계의 시간이 있었고 나름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 후원을 에둘러 강요하는 내 모습이 이제는 너무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유로 그와의 관계를 이어갈 별다른 이유를 만들 수 없었기에 이사장님의 주...
나는 이사장님의 깜빡이는 큰 눈을 한참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러다 한순간에 이사장님한테 홀라당 넘어갈 게 확실했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으나, 어느새 그 사람의 차디찬 표정을 카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좋아하면 닮아간다고 하더니. 어느새 나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표정만 그렇게 지었을 뿐, 마음 속으로는 이 핑계로...
12월이면 추위가 당연한데도 몸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을 옹송그리고 라디에이터 옆에 내내 붙어있어도 오징어처럼 오그라든 몸은 영 펴지지 않았다. 날씨와 달리 수료식이 열리는 홀 입구에는 달력, 다이어리, 송년 선물이 가득 쌓여 시각적으로 엄청 따뜻했다. 다들 한 자리씩 하는 학생들이시라서 마지막 수료일이 아주 풍성했다. 나는 그의 ...
그가 내 앞을 막아섰다. 찌푸린 그 얼굴을 보면 늘 기가 죽던 고석열 사장이 이번에는 금방 물러서지 않았다. 과음하는 중이라서 똥인지 된장인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이사장님이나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벌써 여러 번 이 인간과 맞장을 떴을 테지만, 재단과 대학에 오점을 남길 스캔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
이사장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해성 건축의 속초 연수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었다. 회사 연수원이 그렇게 멋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역시 큰 빌딩을 짓는 건축회사가 지은 연수원이라서 그런지 연수원 내에 찜질방, 노래방, 식당, 사우나, 당구장에 미니 워터파크까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웬만한 리조트 저리 가라였다....
배우 김선호 and 상상의 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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